김연아의 은메달과 심판								
								
									
									선교팀									
									2014-0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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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러시아 소치의 아이스버그 스케이팅 팰리스서 열린 동계올림픽 피겨스케이팅 여자 싱글 프리스케이팅에서 김연아는 러시아의 아델리나 소트니코바에 이어 은메달에 머물게 됐다. 역대 세 번째 올림픽 2연패의 꿈도 물거품이 됐다. 김연아의 연기는 기술적으로 완벽했다. 또 예술의 경지에 이른 감동을 준 무대였다. 그녀의 완벽한 기술 앞에 메달의 색깔은 무의미했다. 김연아는 끝까지 최선을 다했다. 새벽 밤잠을 설친 국민들은 김연아의 마지막 무대에서 더할 수 없이 큰 감동을 받았다. 우리국민들에게는 물론 피겨를 사랑하는 세계의 모든 사람들에게는 영원한 피겨 여왕으로 기억될 것이다. 하지만 심판들이 이를 제대로 판정할 자격이 없었다. 쇼트프로그램에서부터 지적됐던 점수퍼주기 논란이 계속됐다. 결국 김연아는 실수 없이 깔끔한 연기를 펼치고도 개최국 러시아의 아델리나 소트니코바에게 금메달을 내주자 국내·외에서 판정에 대한 논란이 비난 수준으로 거세게 일고 있다 모든 경기나 시합이나 경연이 다 그러하다 사람들이 평가하고 심판하는 곳에는 이런 공정성의 문제가 일어나고 그리고 사람들은 그 결과를 회자한다. 인간이 심판자가 되어 행하는 평가라는 것이 그렇다. 그런데 나는 여기에서 이런 평가의 방향이나 잘잘못을 말하거나 경기 종목에 대한 심판 판정의 장단점을 말하고자 하는 것은 아니다. 모든 경기나 시합에서의 심사위원들의 판정이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 주는 의미를 생각해보고자 하는 것이다. 앞에서 말한 피겨스케이팅과 같은 경기에서는 세계 각국의 내노라 하는 선수들이 시합에 임하여 금메달에 도전한다. 심사위원들이 그들의 경기를 보고 즉석에서 평가하여 점수를 결정한다. 나름대로는 국가를 대표하는 실력을 갖춘 선수들이 시합에 나온다. 하지만 선수들이 표현하는 모습이 심사 규정에 맞아야 하는 것도 있지만 추가로 보너스 점수를 더 주는 것에는 심판의 재량이 있다. 그들의 마음에 흡족함을 주어야 후한 점수를 받을 수 있는 것이다. 그러니 선수들은 심사위원들 앞에서 최선을 다하여 경기에 임하지만 그들에게는 공통적으로 큰 두려움과 긴장감을 갖게 해주는 것이다. 한 순간의 실수가 있으면 나락으로 떨어지게 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선수들은 좋은 점수를 받기 위해 최선을 다하여 경기에 임한다. 그러나 심판들이 주어지는 점수가 메달의 색깔을 결정하게 되고 입상한 자들은 환호성을 지르며 감격의 눈물을 흘리며 기뻐하지만 탈락된 자들은 눈물을 흘리며 슬퍼하는 모습을 보면서 올림픽 경기를 통해서 우리들이 신앙생활을 하고 장차 재판장이신 하나님 앞에 서게 될 우리 자신의 모습을 생각해보게 되었다. 우리의 재판자는 구원주이시자 심판주이신 예수님 한 분뿐이시다. 그분은 공정하시고 의로우신 분이시기에 판정에 불만이 있을 수 없다. 또한 사람들은 누구도 그 앞에서 판결을 피하지 못한다. 최종 권세가 온전히 주님에게만 있다. 그리고 우리는 모두가 다 그 앞에서 무릎을 꿇을 자들이다. 빙상의 이규혁 선수는 6번이나 올림픽 메달에 도전을 했던 것처럼 올림픽 경기에서 입상하지 못하면 다시 도전할 수 있는 기회가 있다. 그러나 불행한 것은 우리의 인생은 제도전이란 것이 없다는 사실이다. 나름대로 성실하고 착실한 삶을 열심히 살아왔다고 자부하는 수많은 사람들이 사후에 당연히 구원을 받으리라고 믿고 하나님 앞에 섰을 때 하나님께서 "나는 너를 모른다"라는 탈락이라는 음성을 듣는다면 그것은 다시는 돌이킬 수 없는 충격이며 큰 불행일 뿐이다. 불교에서 말하는 것처럼 윤회에 의한 인생의 재도전이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그런데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구원을 받은 자들은 다행하게도 하나님의 은혜에 의하여 일단 일차 예선 통과는 한 셈이다. 그러나 구원받은 그리스도인들이라 할지라도 모두가 이 세상이라는 무대에서 신앙생활의 시합을 벌여야 한다. 그리고 그 결과에 따라 천국에서 받게 되는 메달 즉 상급이 달라지게 될 것이다. 아무리 세상 사람들의 칭송을 받으며 화려한 삶을 산 것같을지라도 그것이 주님의 뜻에 합당하지 않으면 좋은 평가를 받지 못할 것이다. 아무리 스스로는 부족하고 못난 것같은 삶으로 생각될지라도 그것이 주님의 뜻에 합당하다면 좋은 평가를 받게 될 것이다. 지금 우리는 우리의 신앙생활을 다시 한 번 점검해봐야 한다. 우리의 신앙생활은 우리를 만족하는 것인가? 아니면 나를 구원의 자리로 불러주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드리며 살아가고 있는 것인가? 내 삶의 주인이 누구인가? 하나님의 뜻에 따라 순종하는 삶을 살아가고 있는 것인가?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신앙생활의 경연을 벌이고 있는 셈이다. 각자 나름대로의 특색을 지닌 신앙생활을 하고 있는 것이다. 자신이 받은 달란트를 사용하여 최선의 경연을 벌이고 있는 것이다. "네가 어찌하여 네 형제를 판단하느뇨 어찌하여 네 형제를 업신여기느뇨 우리가 다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서리라 기록되었으되 주께서 가라사대 내가 살았노니 모든 무릎이 내게 꿇을 것이요 모든 혀가 하나님께 자백하리라하였느니라."(롬14:10-11) 그런데 그 결과에 대한 판정은 우리의 유일한 재판장이신 하나님 앞에 서는 날에 받게 될 것이다. 우리의 삶이 아니 신앙생활이 합격인지 탈락인지를 말이다. 그리고 그 판정과 점수에 따라 상급이 있을 것이다. 내가 재판장이신 하나님 앞에 "합격"의 소리를 듣기 위해 내가 진정으로 예수를 믿고 구원을 받은 하나님의 백성이라면 이제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며,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살아야 한다. "우리 중에 누구든지 자기를 위하여 사는 자가 없고 자기를 위하여 죽는 자도 없도다 우리가 살아도 주를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하여 죽나니 그러므로 사나 죽으나 우리가 주의 것이로라 이를 위하여 그리스도께서 죽었다가 다시 살으셨으니 곧 죽은 자와 산 자의 주가 되려 하심이니라."(롬14:7-9) 자신이 생각하는 그 나름대로의 신앙생활이 아니라 성경의 원칙을 따라 성경 말씀대로 순복하고 성령 하나님과 함께 걸어가는 신앙생활이어야 한다. 이제 법이 아니라 왜 은혜로 우리를 살리셨는지를 다시 한 번 깨닫고 그 은혜를 증거하는 증인들로서의 삶을 살아가기를 바란다. 이런 모습이 사나 죽으나 주의 것이 된 사람들의 바람직한 모습이다. 바라건데 우리 모두가 성령 하나님과 동행하며 성경 말씀대로 살아감으로 최종 판결에서 "잘 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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